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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가있는 살기좋은 명당마을 "둔포면 신항리"를 소개합니다.
회기
의원 현인배의원
조회 2725
발언일 2009-02-13
* 5분 발언 전문은 첨부파일에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현인배 의원]둔포면 신항리는 한반도 중앙부 서쪽 및 충청남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위도 상으로는 동경 127도 북위 37도이다.
자연환경상 동쪽과 북쪽은 넓은 농경지와 4차선 도로가 전개되어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월주산 고용산등이 솟아있다. 동네 앞쪽에서 시작한 물은 동북쪽으로 관대천이 되어 흐르고 해는 남산위에서 솟아 고용산 위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살기 좋은 명당마을이다.
이 서기어린 곳이 바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이신 윤보선님이 태어나신 자리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1897년 8월 26일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에서 부 윤치소 모 이범숙 사이에 6남 3녀중 장남으로 출생 하였으며, 그의 조부 윤영렬은 육군부장으로 삼남 도포사를 역임하였다.
1912년에는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게이오 의숙[慶應義塾] 의학부에서 공부하다가,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 2년을 수료하고 중국 신해혁명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귀국하였다.
20세 되던 1918년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여운형을 따라 중국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 실황을 중국인에게 알리는 “진단보”를 주보로 발행하였고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해오라는 이승만의 부탁으로 독립자금 조달차 동경에 잠입하여 그곳에 체류중인 동생 윤완선을 시켜 부친으로부터 거금 3천원을 받아 상해로 전달했다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백관수·김도연 등과 함께 이월회(二月會)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계획했고, 상하이로 돌아온 후 1920년에는 최연소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21년 6월 영국 유학길에 올라 1930년 에든버러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8·15해방이 될 때까지 은둔생활을 했다.
윤보선의 호는 해위로 영국 유학길에 오를 때 신규식 선생이 지어준 것으로 “바닷가 갈대는 바람에 휘날려도 꺾이지 않는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붕괴된 후 동년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당정권이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직을 계속 유지했으나, 정변주체세력과의 의견 차이로 결국 1962년 3월 정정법에 서명한 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우리 아산이 낳은 대통령! 윤보선님은
독립 운동가이며, 서민을 사랑한 검소한 대통령으로 재직 시 정무에 바쁘신 중에도 언제나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서민들의 안위를 살피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60년대 거제도 장승포에서 호우로 큰 매몰사고가 나자 강한 풍랑 속을 헤치며 작은 배를 타고 거제도 장승포 현장까지 몸소 가서 피해 주민들을 위로 하였던 일화는 진정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훌륭한 대통령이 태어나신 곳 그분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
넓은 평지마을 한 가운데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는 그의 부친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으며,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안 사랑채가 튼 ㅁ자형으로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으며, 안사랑채의 왼쪽 모서리에 ㄴ자형의 행랑채가 이어져 있다. 오른쪽 모서리에는 ㄴ자형의 바깥사랑채가 배치되었으며 안채는 부엌이 동쪽에 배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솟을대문, 안채, 대청마루, 누마루, 툇마루, 사랑채, 홑처마, 중문, 문간채, 별채, 별당채, 행랑채, 네모뿔대 주초위에 네모기둥, 기단 쌓음, 합작지붕, 팔작지붕과 입작지붕, 맞배지붕과대문등 우리가 듣기에 낯설 은 이름들로 구성된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구조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상류주택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윤일선가옥
윤승구가옥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는 현재 중요 민속자료 제196호(1984.12.26)로 지정되어있다.이 외에 충청남도 민속자료 12호(1986.11.19)로 지정이 된 윤일선 가옥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5호(1990. 12.31)로 지정되어 있는 윤승구 가옥이 있는데 이는 모두 해평 윤씨 일가로 이곳 둔포면 신항리에 촌락을 이루며 살았다
날로 발전하는 온천관광도시 아산! 그 속에 숨겨진 진주처럼 지금 이곳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모습인 근대화마을로 다시 태어나 윤보선 전 대통령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지표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아산시가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행정을 실시하여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후세들에게 재확인 시켜 줄 수 있는 기회도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